시계이야기, 그 두번째

2012. 4. 22. 23:19지름고백

 

 

 

그 언젠가 적었던 것처럼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난 시계를 좋아한다. 그것도 많이

 

이번 주말에 그간 동경하던 시계를 어렵사리 장만하게 되었다.

 

 

 

 

인터넷의 시계 매니아들이 우스개 소리로 하는 이야기 중

'시계질의 끝은 롤렉스'란 게 있다.

시계 좋아하는 사람은 처음엔 롤렉스를 부정하며 시작하다 마지막엔 결국 롤렉스를 긍정하게 된다는 이야기인데

뭐 근거없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흔히들 우리가 롤렉스하면 떠올리는 인상은

누런 금색의 '돈많은 아저씨들 시계' 혹은 노티나는 이미지, 예물, "싸이클롭스 맘에 안들어(...)"등등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데(어디까지나 내 주관에 근거한 이야기이니 객관적인 시선이 아님을 이해해 주시라)

처음엔 나도 막연하게나마 위와 같은 생각을 품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위에 등장하는 롤렉스는 어디까지나 라인업의 일부분에 불과하며

거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프로페셔널' 라인업의 경우 스포티하며 아울러 트랜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심지어 Date Just-우리가 생각하는 바로 그 롤렉스-역시도 수많은 베리에이션이 있어 보석은 커녕 노란 색 하나 보이지 않는

녀석들도 있다는 사실도

 

 

 

 

고급시계 = 롤렉스라는 이미지

근래 시계 붐이 일면서(주변에서 그런 느낌을 받은적은 없지만...있는 사람들 얘기겠지 ㅎ) 많은 워치메이커들이 한국에 들어와 있지만

대중성이란 측면에서 이 회사를 따라갈 업체는 없을 것이다.

 

따져보면 상당히 미덕이 많은 브랜드가 롤렉스인데

그 중 가장 돋보이는 매력은 바로 '실용성'이 아닐까 싶다.

 

"한두푼 짜리 시계도 아니고...무슨 실용성 운운을"하실수도 있지만

맨처음 방수 손목시계를 선보인 메이커 답게 현재도 모든 시계가 방수를 지원(아닐수도 있다 셀리니같은 녀석들도 있으니)하고 있고

일부 라인업을 제외하곤 브레이슬릿을 채용하여 일년중 몇일이 아닌 데일리 워치로서도 충분히 기능하게끔 하고 있다.

 

아울러 시계의 기능역시 충실하여

COSC인증을 받은 100%인하우스 무브먼트를 이용하고 있고(이전엔 예거무브도 썼다고 하지만)

 

스타일 또한 언뜻보면 그게 그거같은 비슷한 모양새지만 그 기능에 맞추어 크로노그레프(Daytona), 세계시간(GMT Master),

해양용(Submariner, Deep Sea), 내자성(Milgauss), 탐험가용(Explorer), 요트경기용(Yacht Master)까지 다채로운 라인업도 선보이고 있다.

프로페셔널 라인업 뿐 아니라 일반적인 오이스터 퍼페츄얼 역시 많은 라인업(적다보믄 세월 다 가겠다...)와 많은 소재를 채용하여

어떤 취향의 사람이라도 자신에게 적합한 시계를 만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게다가 처음부터 난 롤렉스 시계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다.

가장 사고 싶었던, 아니 지금도 내 이상형은 Date Just이니까.(솔직히 Day Date가 꿈이긴 한데 그건 가격이...)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계는 크로노그래프가 달린 녀석도, 문페이즈가 달린 복잡한 페이스의 녀석도 아닌

메탈 브레이슬릿에 검은 다이얼 그리고 데이트 창이 있는 심플한 녀석이다.

 

그런데 왜 서브마리너를 샀냐고?

그것도 검은 색이 아닌 화려하다 못해 눈에 번쩍번쩍 띄는 저 녹색 녀석을?

생각해보면 몇년전 오메가에서 플래닛 오션을 살때도 가기전 사려고 맘에 두고 있었던 건 아쿠아테라였다.

 

언젠가 회사에서 H과장과 술마시다 그가 나에게 시계를 좋아하는 건 약간의 나르시즘성향이라는 이야기를 한적이 있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칙칙하고 무채색인 내 마음속 어딘가에 화려하고 어딘가 튀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건 아닐까?

 

 

 

 

이 시계 비싸다.

 

아니 내 주제를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산다는거 자체가 미쳤다...라고 할정도로 쉬운 가격이 아니다.

(더 놀라운건 이런 비싼 물건들이 매장에서 1년 혹은 그 이상 대기해야 만날 수 있단 사실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언젠가 살꺼라면 더 가격이 올라(처음 내가 이넘-정확히는 구버전-을 사고 싶어했을때보다 가격이 약40%가량 상승했다!)버리기

전에 사야겠다는 생각, 혹은 환금성이 좋은 인기 아이템이니 돈이 궁해도 바로 좋은 가격에 정리 할 수 있을꺼라는 셈이

내 머리 속에 있었다.

그런다고 팔일은 없겠지만

 

더 나이먹고 혹시 내가 금전적으로 여유있는 위치에 올라가서 그 때 사도 늦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때는 지금과 같은 '행복'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조급함도 있었다.

실은 어제도 시계 인수 받아 집에 와서 그냥 서랍에 넣어두고 잠만 잤다...몇년전만 해도 상상도 하지못할

내 감수성이 혹은 열정이 더 사그라지기 전 만나고 싶었다.....

공들여 만났는데 덤덤하면 너무 슬퍼지잖아.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활자를 남기고 말았다.

 

여기에 내가 어떤 말은 더 첨언한다 하여도 내 이번 구매는 사치스러운 짓이며, 내 경제 상황으로 몰때 무모하다고 해도 무방할 폭거였으며

웬만한 사람들은 절대 이해하지 못할 행동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매일 밤 인터넷 시계동호회를 드나들며 생소한 브랜드의 시계, 어려운 시계 용어들을 주워 섬기고...

교보나 영풍 문고의 수입도서코너에서 사온 일본 시계 잡지들을 숨죽여 넘긴,

어차피 살 능력도 없으면서 가끔 시계 매장에 찾아가 이것저것 구경만 실컷하고 아쉽게 돌아서 온

내 지난 나날들에 이 시계를 안겨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