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임마꿀레
2007. 8. 3. 00:41ㆍ독서노트/문학(소설, 에세이)
어쩌면 평생 별관심 없이넘어갔을 이 책을 알게된건
부산 출장가는도중에 읽었던신문서평에서 였다.
확실히 언젠가 한번은 들어본적 있었던 르완다, 인종학살 그리고 그 생존자의 이야기
당시 '타인의 고통'이란 책을 상당히 재미있게 봤던 터라 한번 읽어봐야 겠다 마음을 먹었었는데.....
내용은 책의 이름과 동일한 저자가 94년의 르완다 사태 기간에 겪었던 참상과 내면의 이야기를
서술한 내용되겠다.
3개월 가량의짧은 시기동안 900만이 채 안되는 나라에서 약100만명가량의(책의 내용에 따르면)
사람이 단지 종족(투치족, 전체인구의 약 14%정도였단다)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들의 동료, 친구, 이웃
(후투족 약 85%정도로 다수파였드랬다)들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물론 자신의 양심에 따라투치족의 이웃을 도와준 사람도 있었지만 그들은 소수였고
저자도 그 몇명안되는의인들에 의해 도움을 받아 대략 3달정도를
좁디좁은 화장실에서 같은 처지의 종족 5명과 지내며 불안 그리고 증오와 싸워야만 했다
(당시 투치족을 도와줬던 후투족 의인을 다룬 영화가 있다고 한다 '호텔르완다'라고 하던데 나중에 함 봐야겠다)
머 르완다 사태의 배경에는 홍합요리/와플을 좋아하는 나라의 악랄한 식민통치 기법이 있었다는 둥,
그런일이 벌어지는데도 걍 손놓고 무시하고 있던 포도주 유명한나라니 카우보이 횽아들도 문제이기는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본좌는 '종족'이라는 추상적이고 아울러 정치적인 개념이 몰고왔던 그 놀라운 파괴력에 다시금 두려움을 느꼈다
저자가 말했던 것처럼 오랜시간을 같이 살아오면서 혼혈도 이루어졌을 그 두 종족간에
서로간을 나눌만큼의 극적인 차이가 있었을까?
결국 식민 제국주의국가의 통치방식과 그 이후 몇몇 정치가들의 반목, 증오(그 속의 정치적 목적또한)가 일상영역까지 감염되어
이러한 참상을 가져왔던 것이 아닐런지....
게다가 유감스럽게도 이미 우리가 알고 있듯 이는 르완다만의 비극이 아니었다.
아무튼 본좌가 위와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피해자-가해자간에 반복되는 증오의 사슬을 깨고 나올 수 있었을까
자신의 가족을 죽인 사람에게 용서한다고 말할 수 있었던 저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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