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2008. 6. 11. 22:46ㆍ독서노트/문학(소설, 에세이)
(오늘은 간만에 산문집 함 읽어봤으니 산문체 짭 컨셉으로.....(혼자서도 잘 노는 군화-_-))
친구중에 얼치기이긴 하지만 나름 사주를 볼 줄 안다고 하는 녀석이 있다.
언제쯤이었던가? 아무튼 그 녀석이 내 사주를 봐준다고 으쓱대길래 아무생각없이 물어보는 몇가지를 답해주었더니
대뜸 한다는 얘기가 "너 약간 역마살이 있네?"
소설같은데 나오는 것 처럼 '엿장수'를 할만큼 심한건 아니지만 역마살 비스무레한 것이 껴 있기에
해외던, 지방이던 아무튼 쏘다니는걸 좋아할 거라는 게 그 친구의 이야기의 요지였고
당시에 나는 그말을 음식점에서밥먹고 나오며 대충입 속을 쑤셔보던 요지를 뿐질러 버리듯
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근데 지금생각해보니 나는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남에게 '부탁'하면서 밥을 먹고 살고 있으며
더더군다나 한2일정도 연속으로 회사에 앉아있으면 좀이 쑤실것 같은 체질이 되어버렸다.
그러고 보면 그때 그 이야기를 해준 친구가영 얼치기는 아니었던지 싶다.
아무튼 어제 유감스럽도 사무실에서 죽치고 있었던 나는 "오늘은 꼭알찬 하루를 보내야지!"라는 생각에
이곳저곳 전화기를 돌려가며 무려 3건의 약속을 잡아버렸다.
(근래 무서울정도로 뛰고 있는 기름값 때문에라도 조금 더 무리 했는지도 모르겠다)
뭐 대수롭지 않게 '잡았다'라는주도적인 표현을 써버리긴 했지만 '부탁'하는 업을 가진 입장에서
'잡았다'라는게 감히 가당키나 한 말이려나.....
이미 왕인 분,왕이 되어주셨으면 하는 분들의사정에 조금이라도 맞춰보려하니 오전 일찍 부터오후 까지의
중간에 조금씩 이빨도 빠진 방문일정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나는 소기의 목적(해방?)을 달성하였다는 생각에 나름 뿌듯해하고 있었드랬다.
그리고 당일! 나는 오전일찍 보무도 당당히 사무실을 나서 서울근교의 공단으로 향하였다.
처음 미팅 시간은 11시. 내가 접견실에 도착한 것은 오전 10시 50분
"이정도면 매우 적절한시간이군,나도 역시 사회인으로서 기본을 되어있구나."등등
나르시스의 추종자인양 혼자 득의양양해 하며 첫번째 상대방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니 근데 이게 왠걸!무언가 상당히 궁색한 말투로 전화를 받은 상대방은
갑자기 일이 생겨 오늘은 못만날꺼 같다라는 이야기를 나에게 해주었다.
워낙 긴급상황이라 먼저 연락못해서 미안하게됐다는나름 심심한 위로도 해주면서.....
잠시,전화를 받은상대방으로 말씀드릴꺼 같으면 모 중견업체의 부서 책임자이기도 하며 나에게는 까마득한 대학교
선배이기도 하며 무엇보다도 나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는 자비로운 위치에 서계시기까지 한 분이다.
(이런걸 보고 삼박자가 맞는다고해야하는 걸까!)
아무튼 나는 그 '삼박자'님께 압도되어 감히 따른 말씀 여쭙지않고 바로 이번주 금요일날 다시 찾아뵙겠다고
힘차고 명랑하게 외치듯 말하면서전화를 끊었다.
이제 그토록 뿌듯해 했던 나의 이빨빠진 일정의 한쪽 이빨은 다 뽑혀나가버렸고,
나는 한 2시간여 이상을 '잇몸'만으로 보내야하게 생겼다.
뭐 밥벌어먹고 살기 시작하면서 이런일을 한두번 겪은 것도 아니기에
이제는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있다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나는 공단 언저리에 위치한 모 할인매장에 차를 세워두고 시간을 보내기로 하였다.
그 매장은 나름 주거지와 떨어진 외진 곳에 있어 한가로우며 더구나 주차비도 없기 때문에 시간때우기엔
아주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단, 한가지 문제점은 할인매장에 으례 붙어있는 푸드코트가 없다는 점......
오전에 일은 하나도 안한 주제지만 무언가 배는 채워야 했던 나는 별 수 없이 음료수와 과자를 사서
차 안에서 오물오물 씹어먹기로, 아니 먹어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다.
(마침 용무차 그 공단에 찾아온 형이 과자로 배채운다는 동생의 이야기가 딱해보였는지 햄버거와 음료수를
사오는 고칼로리 친절을 베풀어 주었다 감사하게도!)
그렇다고 주차장 한켠에서 과자나 오물거리고 있기엔 내 2시간, 그리고 얼마남지 않은 청춘이 아까운법!
무언가 오락거리가 필요했던 나는 결국 가방에 읽다 만 책이 한권있었다는데 생각이 미쳤고,
기름을 아끼기 위해 에어콘을 껏다 켰다를 반복했던 후덥지근한차안에서 기어코 다 읽어버렸다.
다름아닌 음식관련 산문집.
단지 배를 채우기 위한 일념으로 과자부스래기를 씹고 있는 주제에 먹을 것 관련된 책이라니.....
내가 처한 아이러니한 상황에 쓴웃음도 났지만 그래도지푸라기가 이거 하나뿐인데 어쩌나...
그래도 다행이었던 건 이책은 흔히들 나와있는맛집 소개책도 그리고 저자의 식도락 편력기도 아니었다는 점이다.
인간의 뇌란 참 희한한 것이여서 우리가 다 잊었다라고 생각하는 오래되고 소소한 일들도 뇌 속 어딘가 깊숙한 곳에 저장이 되었다가
특정 '계기'에 따라서는갑자기 생생히 떠오르기도 하나보다.
필시 저자는 음식도이러한 '기억의 방아쇠'쯤 하나로 여기고 있는 듯 싶다.
책 속에서는 끊임없이 여러 음식들이 열거되지만그것은 맛이 아니라 어떨때는 친구로혹은 유년의 추억으로
아니면 거창하게도세상의 진리로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저자와 연배도 퍽 떨어져있고, 시골생활이라고는 조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즉, 저자와 별달리 삶에 공통점이 없었던 나(게다가 심한 편식광이기도 한!)로서는
솔직히 저자의이야기에 100% 공감을 느낄수는 없었다.대부분의 경우는 다만 어림잡아보려 했을 뿐.....
그런데 한가지 엉뚱하게도한가지 가슴저미게 와닫는 감정이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서러움'이었다.
나름 유머와 해학이 넘치는 이책(혹시 읽지 않으실 분들은 이 책에 대한 인터넷 속서평을 보시라)에서
중간에 한켠 나오다 말았던 그 감정.....
나는 왜.....하필이면 서러웠을까?
오전에 '삼박자'님에게 결국 아무말도 못하고 전화를 내려놔야만 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나름 자동차 업계에 빠삭하시다는 형에게 오지랖넓게 물어 본 모 자동차회사의 전도유망함과
어쩔 수 없이 비교했던 나 자신의 초라함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나는 오후에 몇명인가의 사람들을 만났고, 회사로 돌아와서는 회사 동료들과 웃으며 농담도 하고
저녁에는 맛있는 아이스 커피를 마셨다.
그래도 내 마음 속의 서러움...그 뜻모를 모진 서러움은 계속 남아있었다.
(아놔.....이건 머 산문 춈 써볼랬더니 일기 + 넋두리가 되었네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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