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 11. 00:06ㆍ독서노트/경영, 경제, 자기계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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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승수,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시대의창, 2009.
(이해못하믄 원숭이이하 될까봐 긴장타며 읽었다는 >_<(어익후))
작년에 발매당시에 잠깐(?) 이곳저곳에 언급됐던 기억이 나는
연말의 장기 연휴시기에 읽어보았다.
대학의 교양강좌 같은 분위기(?)의 글은 제목 그대로 읽기쉽긴하였으나
그렇다고 아예 니나노...이런건 아니고 약간의 집중력(?)을 요하는 수준정도로 잘 정리되어있다.
생각해보면 이런 쪽으로는 읽었던 책이 유년시절의 만화책*1밖에 없는 초무식 본좌로선
"아 공부 잘했당"수준이긴 하지만 그래도 언제나처럼 밸런스지향(저기 가끔 저한테 왼쪽에 가깝다..라고 하시는 분들있는데
그건 당신들 기준이 글러먹은 거라고...세상은 당신들처럼 '오른쪽'이 중심은 아니래두?)으로서는
몇가지 아쉬운 부분이 없잖아 있었던 건 사실이다.
얘기가 잠시 딴데로 빠지는 감이 없잖아 있긴 하지만...사회-자본주의 논쟁을 보면서 언제나 궁금했던 건
(뭐 이책에 나왔던 얘기도 포함하자면)
1. 정말 원시공동사회는 있었을까? 아니 사람간에 차이가 없을 수가 있나?
가장 오래 된 공동체에서는 생산수단의 소유와 분배가 평등하게 이루어지고 있었으나, 생산력이 높아짐에 따라 빈부의 차가 생겼으며 평등한 이웃관계는 무너졌다. 따라서 부락공동체도 해체되기 시작하였다. 이 같은 해체현상은 완만하게 진행되어 오랫동안 사회 전체에 흔적을 남겼다. 정치적 지배자는 경제적으로 개개의, 또는 전체로서의 공동체를 지도하므로, 착취는 이념적으로 은폐되었다(아시아).
(뇌입어 백과사전(두산백과사전)에서)
음...하다못해 금수의 세계에도 서열과 그에 따른 먹이 혹은 배우자 선택의 차이가 발생한다.
잉여가치가 없던 시절이다? 하지만 개개인간의 신체능력의 차이는 있었을터,
진화론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지만 적자생존이 평등보다는 더 자연에 가까운 상황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터라.
오히려 평등같은 단어는 지극히 이성적 표상이 아닐런지
안타까운 부분이긴 하지만 경제력의 격차, 분배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100의 능력을 보인 사람과 50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 동일한 결과를 가질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 사회가 초래하는 건 결국 공산주의가 보여준 비효율..이라고 하고 싶긴 하지만 쩝)
하지만 간과해선 안될 부분은 역시 그 능력차를 판단하는 '기준' 자체는 공정해야 한다는 것.
사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현재 이 사회가 나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은 틀림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그런 부분에 대한 지속적 감시와
때에따라서는 응징(물론 선거겠지?)도 필요하다는데 이견은 없다.
2. 지극히 유물론적 사고에 대한 거부감
자본론에서 모든 가치는 항상 '노동'에 맞추어져 있고 자본가의 여타 다른 행위들에 대한
가치는 상당히 저평가 되어있다는 느낌이다.
물론 노동자의 땀과 노력이 중요하다는데 이견이 있는 건 아니고 마르크스 시대는 지금과 틀릴 수 있으니 뭐 확인은 필요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자본..이라는게 걍 돈만대는 건 아니라는거
간단히 따져봐도 구지 돈 놓고 돈 먹기 할려면 걍 부동산 사거나 사채하면 되지않나?
왜 머리아프게 제조업이니 서비스업 하겠냐고..
업종선택, 자금조달, 투자계획과 집행, 리스크헷지, 판로개척, 회사 방침결정 등등....
할꺼 무지 많은데 -_-
3. 자본과 노동에게 정말 접점은 없는 걸까?
세상은 자본가에게 지배되어 있고, 예나 지금이나 노동자는 착취를 당하고 있는 상태라는 건 동일하다.
국가도 어느쪽냐면 자본에 이익에 맞추어 대중을 핍박하고 있으니 다들 각성하고 조직화하여 노동자의 시대, 민중이 주체가 되는 시대를
만들자는 것이 마르크스도 그렇고 이 책의 저자가 지향하는 바이기도 한거 같다.
다 좋다.
나라꼴 돌아가는 거 보면 무언가 이너서클이란게 확실히 존재하는 거 같고 솔직히 법과 원칙 운운하던 분들의 행적이라곤 믿기지(?)않는
일들이 발생하고 그분들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라고 읇조리실땐 "아...저분이 얘기하는 국가와 민족에선 나같은 무지랭이는 비포함이겠군화.."하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뭔가 문제가 있는 건 맞기는 맞는거 같다.
그렇다고 자본가를 타도하고 노동자가 주체가 되는 세상을 연다?
과연 대중이 주체가 되면 대중의 이익만을 위한 국가 운영과 정책이란게 가능한건가?
그렇다면 노동자의 세상을 지향했던 공산주의 사회에 등장한 노멘클라투라들은?
1번과도 연결되긴 하지만 이러한 입장은 뭐랄까 너무 이상주의적*2이라는 느낌이 없잖아 드는게 사실이다.
아울러 나쁜 x들도 있긴 하지만 그들도 우리화 함께 나아가야하는 일원인데 절대적 배쳑이라니...
오히려 서로간의 입장 존중과 접점을 찾는 정치적 노력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닐까.
뭐 그런 입장에선 진정으로 우리 노동자를 대변할만한 정치세력이 한국에 없다는게 문제기는 하구나...
정말 다들 정신차리고 누가 진정 우리같은 "힘없고, 빽없는" 사람들을 위하는 지에대한 진지한 계급의식을 가지는 날이 오기를...
*1 송병락, 이원복 작화, "자본주의 공산주의", 두산동아, 1990.
*2 주변에서 많이들 들어보셨을 것이다 자본주의-공산주의의 경쟁에서 누가 승리했으며 결과적으로 어느 쪽의 노동자가
풍요로운 삶과 혜택을 누릴 수 있었는지.
갠적인 감상으로도 공산주의보단 자본주의(수정) 쪽이 '사람'을 더 잘 이해하고 보다 유연하게 체제를 바꾸어 왔다는데에는
이의가 없다.
하지만 말이지...근래 드는 의문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노동이 기술혁신 등으로 '파이'를 키워 윈윈해왔다고는 하는데..
그게 실은 너무 단순한 판단이 아니었을까라는 거.
결국 소득도 늘리고 경제력도 키워왔던 '수혜자'들은 서구 선진국이나 신흥 산업국 일부..뿐이고
그들의 이런 성공을 위해서 지구 면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아시아 국가들의 국민들은 착취에 노출되어 왔으니까.
일국의 자본-노동이란 시점이 아닌 전세계를 지배-착취의 구도로 보면 딱히 자본주의가 잘해온건가라는 의문이 없잖아 드는 것도
사실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거!)
거기에 일국적인 관점으로 돌아와서도 강도의 차이는 있으나 어느 나라던지 중산층의 파괴와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보니 위에 얘기했던 노동자-중산층의 설립이라는 자본주의의 공적이 한계를 노정하고 있는 상황에는 틀림이 없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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